[블록미디어] 올해 암호화폐 시장은 거대한 붕괴를 목격했다. 우상들이 무너지는 굉음이 수 차례 울려 퍼졌다.

올해 봄 갑자기 사라진 안드레 크로녜(Andre Cronje)의 글이 다시 화제다. 크로녜는 디파이(DeFi)의 시조새로 여겨지는 와이언(Yearn) 파이낸스의 창시자다.

그는 암호화폐 시장에 환멸을 느꼈다며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테라-루나 사태 직전인 4월 18일 미디엄에 남긴 글에는 앞으로 닥칠 일들을 예언하는 듯한 내목도 있다.

블록미디어는 해당 글 전문을 번역했다. 중간 제목과 괄호 안의 글은 블록미디어가 붙인 것이다.

암호화폐 문화의 흥망성쇠(The rise and fall of crypto culture)

암호화폐는 죽었다. 암호화폐여 영원하라.(Crypto is dead. Long live Crypto)

나는 내가 늙은이였으면 한다. 통화정책이 탄생하던 바로 그 순간을 봤을 정도로 나이 많은 노인이었으면 한다. 그들이 저지를 실수를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왜냐하면 우리가 바로 그런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내가 더 잘 만들 수 있는데”

위키피디아를 보면 채권, 시뇨리지(seigniorage : 주조 차익), 각종 부채와 관련 상품들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이런 설명을 읽고 “나라면 더 잘 만들 수 있는데”라고 생각한 많은 사람들이 크립토 진영에서 유사한 것들을 만들고 있다고 느끼곤 한다.

(기존 금융상품의 약점을 찾아내 디파이 상품으로 만들고 있다는 뜻.)

프로그램 코딩을 할 때 자주 일어나는 일이 있다. 다른 사람이 짠 코딩을 읽다가 문제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건 필요 없지”
“더 잘 짤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이렇게 했을까? 의미 없는 건데”

그리고는 “내가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면서 코딩을 수정하기 시작한다.

며칠, 몇주, 심지어 몇달을 매달리며서 코딩을 재설계하는데, 첫번째 벽에 부딪치게 된다. 그리고 몇가지 양보를 해야만 하고, 이렇게 두번째 벽에 부딪치게 된다. 그리고 세번째 벽, 네번째 벽… 마침내 최초의 코딩과 정확하게 똑같은 프로그램으로 되돌아간다.

# 기존 금융상품의 실수를 반복

“아하, 그렇구나,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 하는 순간이 온다. 왜 그것이 그럴 수 밖에 없는지 이해하게 된다.

(디파이 등 크립토 진영이 추구한 새로운 시도들이 결국은 기존 ‘중앙화 금융’으로 되돌아갔다는 뜻이다.)

통화정책도 마찬가지다. 통화량 공급, 발행, 부채, 채권, 시뇨리지, 부채화, 상품, 증권, 파생상품을 단독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이러한 금융 장치들은 어떤 이유가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크립토는 새로운 세대다. “우리가 더 잘 할 수 있다”고 외치는 세대다.

# 크립토 컬처가 크립토 에토스를 죽였다

나는 오랫동안 크립토 컬처(crypto culture 문화)를 경멸해왔다. 나는 오랫동안 크립토 에토스(crypto ethos 정신)를 사랑해왔다.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크립토 에토스는 자기 주권, 셀프 커스터디(자기 코인은 자기 지갑에), 자기 권한 부여와 같은 개념들이다.(crypto ethos is concept like self-sovereign rights, self custody, self empowerment)

크립토 컬처는 부유함, 특권, 부의 집중, 그리고 자만심 같은 개념들이다.(Crypto culture is concepts like wealth, entitlement, enrichment, and ego)

크립토 컬처가 크립토 에토스를 질시시켜버렸다.(Crypto culture has strangled crypto ethos)

# 지금 당장 멈추게 할 규제가 필요하다

한 교수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계약은 나쁠 때를 위해 있다. 좋을 때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규제와 법률도 같다. 규제는 나쁜 때를 위해 있다. 좋을 때를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규제를 필요로 할 때는 상황이 나쁠 때다. 모든 것이 달콤하고, 샴페인을 터뜨릴 때는 규제가 필요치 않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규제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본다. 예방하고 억제하는 차원의 규제가 아니라, 보호를 위한 규제가 필요하다.

아이들은 전기 콘센트에 손가락을 집어 넣으려고 한다. 왜 그렇게 하면 안되는지 아이들이 배우기 전에 그런 위험한 행동 자체를 멈추게 해야 한다. 어느 날 아이들은 그걸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아니다.

(오늘 당장 위험한 행동을 하지 못하게 멈추게 할 규제가 필요하다는 뜻.)

# 크립토는 영원하다

크립토는 죽었다. 크립토여 영원하라.(Crypto is dead. Long live Crypto)

우리는 새로운 시대에 들어섰다. 암호화폐 시장은 곧 불모지가 될 것이다. 실수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알려지지 않은 지갑이 어둠 속에서 나쁜 짓을 하려고 도사리고 있다.

(unknown wallets lurk in the shadows 마치 테라-루나 사태를 예견한 듯한 표현이다.)

우리는 새로운 블록체인 경제의 부상을 보게 될 것이다. 새로운 세계는 탐욕이 아니라 신뢰가 이끌 것이다. 여기서 신뢰는 신뢰없음(trustlessness)이 아닌 신뢰(trust) 그 자체다.

(탐욕스러운 사람들이 신뢰를 가장한 채 시장을 혼탁하게 만들었다. 앞으로는 사람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수학적 프로토콜을 신뢰하는 탈중앙 시스템, 블록체인 경제가 도래한다는 뜻.)

역설적으로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 그 어느 때보다 나 자신을 흥분시킨다. 나는 다시 한 번 불모지로 주저 없이 들어갈 것이다. 나는 새로운 미래에 열광할 준비가 돼 있다.

(Crypto is dead. Long live Crypto 라는 말은 과거의 암호화폐는 죽었고, 새로운 암호화폐가 영원히 살아 미래를 만들 것이라는 뜻이다. 크로녜가 이 글을 작성한 시점은 4월 18일이다. 한 달 후인 5월 13일 바이낸스 등에서 테라, 루나가 상장 폐지됐다.)

안드레 크로녜 글 원문 링크

속보는 블록미디어 텔레그램으로(클릭)
전문 기자가 요약 정리한 핫뉴스, 블록미디어 카카오 뷰(클릭)

같이 보면 좋은 기사

2022년을 보내며…암호화폐 시장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a41

source

By pplny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